Sculptor's biographical dictio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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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원
작가 작품
작가 프로필
이채원 (李綵元), Lee, Chae-won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 조소 박사 수료
성신여자대학교 조소과 졸업 (학사, 석사)
<개인전>
2025 이어지는 숲 (갤러리이즈, 서울)
2023 도시의 숲 (온드림소사이어티, 서울)
2021 풍경: 오가는 감정 (삼각산시민청갤러리, 서울)
2021 경험적 풍경: 죽림(竹林) (갤러리일호, 서울)
2020 그들이 찾는 공간 Landscape: Their Space (갤러리사라, 서울)
<주요 그룹전>
2025 15인의 여류조각가 (장은선갤러리, 서울)
2024 달성대구현대미술제 <그래도, 낭만> (강정보 디아크 광장, 대구)
2023 우리시대 조각을 묻다 (부산대학교아트센터, 부산)
2022 쇼콘 (오산시립미술관, 오산)
2021 뉴노멀-조각을 조각하다 (광주비엔날레관 5실, 광주) 등
<주요 프로젝트>
2026 서울국제조각페스타 개인부스 (코엑스, 서울)
2023 양천구 오목공원 <다시-보기> 프로젝트
2023 갤러리진선 기획 아트프로젝트
2023 모산조각레지던스 WAS2023
2022 동아제약 오쏘몰 이뮨 아트캠페인 <오쏘 아티스틱> 시즌2 콜라보
2022 성북문화재단 예술순환로 지역공간협력 프로젝트 <곳곳>
<수상 및 선정>
2024 달성대구현대미술제 청년작가 우수상, 달성문화재단, 대구
2023 빛조각프로젝트 선정, 노원문화재단, 서울
2023 Onso Artist 2023 선정, 현대차정몽구재단, 서울
2022 서울국제조각페스타 창작지원 선정, 에이그립, 서울
2021 삼각산아트랩 선정, 서울시삼각산시민청, 서울
현. 한국조각가협회, 성신조각회, 성신여자대학교 출강
lcw15328@naver.com / www.instagram.com/leechaewon_art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 조소 박사 수료
성신여자대학교 조소과 졸업 (학사, 석사)
<개인전>
2025 이어지는 숲 (갤러리이즈, 서울)
2023 도시의 숲 (온드림소사이어티, 서울)
2021 풍경: 오가는 감정 (삼각산시민청갤러리, 서울)
2021 경험적 풍경: 죽림(竹林) (갤러리일호, 서울)
2020 그들이 찾는 공간 Landscape: Their Space (갤러리사라, 서울)
<주요 그룹전>
2025 15인의 여류조각가 (장은선갤러리, 서울)
2024 달성대구현대미술제 <그래도, 낭만> (강정보 디아크 광장, 대구)
2023 우리시대 조각을 묻다 (부산대학교아트센터, 부산)
2022 쇼콘 (오산시립미술관, 오산)
2021 뉴노멀-조각을 조각하다 (광주비엔날레관 5실, 광주) 등
<주요 프로젝트>
2026 서울국제조각페스타 개인부스 (코엑스, 서울)
2023 양천구 오목공원 <다시-보기> 프로젝트
2023 갤러리진선 기획 아트프로젝트
2023 모산조각레지던스 WAS2023
2022 동아제약 오쏘몰 이뮨 아트캠페인 <오쏘 아티스틱> 시즌2 콜라보
2022 성북문화재단 예술순환로 지역공간협력 프로젝트 <곳곳>
<수상 및 선정>
2024 달성대구현대미술제 청년작가 우수상, 달성문화재단, 대구
2023 빛조각프로젝트 선정, 노원문화재단, 서울
2023 Onso Artist 2023 선정, 현대차정몽구재단, 서울
2022 서울국제조각페스타 창작지원 선정, 에이그립, 서울
2021 삼각산아트랩 선정, 서울시삼각산시민청, 서울
현. 한국조각가협회, 성신조각회, 성신여자대학교 출강
lcw15328@naver.com / www.instagram.com/leechaewon_art
작가 노트
평론
이어지는 숲 - 공생의 도시 생태학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이채원의 5회 개인전 《이어지는 숲》은 도시와 숲 사이의 경계에 주목한다. 이채원이 주목하는 경계는 양측을 선명하게 나누고 양측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단절면’으로 존재하기보다 양측을 오가거나 양측의 정체성을 일정 부분 공유하는 ‘중간 지대’로 존재한다. 즉 도시와 숲 사이의 경계에 주목하는 이번 전시는, 도시와 숲을 문명과 자연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를 비판하고, 이 둘을 ‘하나의 연결된 생태적 몸’으로 보고자 한다. 즉 이채원은 ‘도시는 자연의 일부이며, 인간과 비인간, 인공과 자연은 연속적인 생태계의 구성요소’로 간주하는 오늘날 ‘도시 생태학(Urban Ecology)’의 관점을 조형적으로 탐구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I. 도시의 숲에서
이채원은 이번 전시에서 <도시의 숲>, <이어지는 숲>, <도시인이 자연을 보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세 연작을 선보인다. <도시의 숲> 연작은 아파트 같은 도시 건축물을 마치 자작나무 형상처럼 보이게 만들어 도시와 자연의 경계에 질문하는 멀티플 조각(multiple sculpture) 작업이고, <이어지는 숲> 연작은 고층, 저층의 도시 건축물과 함께 공원 혹은 숲과 같은 자연이 한데 어우러진 도시 풍경을 통해 도시 생태의 이중적 경계에 질문하는 상황 조각(contextual sculpture)이자 연극적 설치(stage-like installation) 작업이다. 한편 <도시인이 자연을 보는 방법> 연작은 도시인이 키우는 반려 식물을 형상화하고 자연과 공존하려는 인간의 원초적 의지에 질문하는 비교적 소규모의 좌대 기반 조각(pedestal-based sculpture)이다.
앞의 두 연작이 도시 문명과 자연의 경계에 질문하는 거시적 담론의 작업이라고 한다면, 뒤의 연작은 도시인이 실내 공간에서 반려 식물을 키우면서 자연을 대면하는 태도를 다루는 미시적 담론의 작업이다.
이채원은 <도시의 숲> 연작에서, 스테인리스 스틸 판을 접어 만든 육각, 사각, 삼각의 다면체 기둥을 통해 아파트나 빌딩과 같은 도시 건축물이 만드는 도시 풍경을 선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 건축물은 자작나무 형상을 닮아있다. 흰색의 자작나무 껍질 위에 수평의 선들로 남은 검은색의 표면 흔적은 건축물을 닮은 그녀의 조각 위에 녹색 선묘로 표현된 창문으로 오버랩되고, 자작나무에 맺힌 검은 옹이의 모습은 그 조각 위에 원추, 반원추 형상의 녹색 구멍으로 표현되었다. 전시장 입구에 자리한 8개의 커다란 멀티플 조각이나 같은 형상의 또 다른 소품은 빌딩과 자작나무의 형상을 함께 껴입고 서서 ‘도시와 자연이 하나가 된 도시의 숲’을 선보인다.
이 연작에서 도시와 자연, 건축과 숲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 이 작품들에서 둘 사이의 경계는 넓은 중간 지대로 겹쳐 있는 까닭에 모호하다. 이채원은 이 연작을 통해서 도시와 자연을 나누는 경계를 해체하고 도시 건축물들을 생태적 흐름 안에 놓인 하나의 숲으로 재인식하게 만든다. 흥미로운 것은, 이채원의 이 작품이 마치,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된 복합적 행위자 집합체라고 설파했던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의 탈인간중심주의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eory, ANT)’을 조형적으로 실천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라투르는, 사람(인간 행위자) 중심으로 사회를 이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비인간(자연, 기계, 사물 등)과 인간 모두를 ‘행위자(actor)’로 간주하여,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비인간-인간의 네트워크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모든 도시 풍경은 인간 행위자만의 결과물이 아니며 시멘트와 철근과 같은 사물뿐만 아니라 나무, 숲과 같은 자연 등 모든 비인간 행위자 주체가 함께 만든 ‘인간과 비인간의 상호작용적 산물’이라고 할 것이다.
II. 이어지는 숲으로
이채원의 또 다른 연작 <이어지는 숲>에서도 건축물과 숲, 도시와 자연의 경계는 넓디넓은 중간 지대를 통해 흐려져 있다. 도시의 높고 낮은 건축물들이 공원이나 녹지와 맞물려 인공과 자연의 풍경을 서로 네트워크를 이룬 상태에서, 이중적 경계(도시 건물로 이루어진 숲이자, 커다란 자연의 풍경이기도 한, 또는 도시 문명이자 자연이기도 한)의 생태적 풍경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스테인리스 스틸, 화산석, 편석, 인조 이끼 등을 이용해서 마치 무대 장치나 미니어처 풍경과 같은 극적 설치 방식의 ‘풍경 조각’ 혹은 ‘상황 조각’을 선보이는 이채원의 이 연작은, 도시 자체를 ‘하나로 이어진 숲’으로 은유하면서, 우리에게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처럼 인간과 자연, 도시와 같은 비인간 사물이 서로 연결된 채 작동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이처럼, <이어지는 숲> 연작은, 도시를 분리 공간이 아니라 애초부터 숲으로 이어진 공간, 즉 자연의 확장 공간으로 고찰한다. 달리 말해, 시멘트, 철근, 풀포기, 나무가 하나의 생태적 몸을 구성하는 ‘살아있는 장소로서의 도시 생태학’을 구상한 셈이다.
이러한 조형적 성찰은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뿐만 아니라 팀 인골드(Tim Ingold)의 생태인류학(ecological anthropology) 기반의 ‘살아가는 선들(lines of life)’이라는 개념과 맞닿는다. 이 개념은 ‘세계는 고정된 점이나 구조물이 아니라, 자라고, 움직이고, 이어지는 선들의 얽힘으로 구성된다는 것’으로, 인골드는 라투르의 네트워크 개념보다 더 유기적이고 생명적인 구조인 이른바 덩굴 구조(Meshwork)를 주창한다. 도시 생태학을 탐구하는 <이어지는 숲> 연작 곳곳에서, 이 살아가는 선들과 덩굴 구조는 쉬이 발견된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된 도시 건축물이 뿌리를 내린 곳은 화산석, 편석으로 구성된 자연이고, 인조 이끼로 표현한 녹지라는 자연은 이미 문명계에 뿌리를 내리고, 덩굴 구조를 이룬 채 ‘살아가는 선들’로 숨을 쉬는 중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채원의 <이어지는 숲> 연작 중 또 다른 유형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인골드의 ‘살아있는 선’과 ‘덩굴 구조’가 매우 시적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형식상 도시 건축물처럼 멀티플 조각으로 표현된 <도시의 숲> 연작과 닮아있는 이 작품들이 <이어지는 숲>으로 명명된 까닭은, 내용상으로는 인골드의 생(life)의 개념과 더 가깝게 마주하는 까닭이리라. 다면체의 건축적 구조물 혹은 육면체의 빌딩 형상처럼 보이는 이 작품들의 스테인리스 스틸 표면에는, PVD 코팅을 통해 금빛을 낸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들이 마치 인골드의 ‘살아가는 선들’처럼 패턴화되어 있다. 이 작품들은, 숲에서 산책하던 중 나무들의 표면 위에 일렁이는 햇빛 문양이 아름다운 패턴을 만들었던 장관에 감흥을 받았던 작가가, 도시 건축물 형상의 조각 위에 금빛의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으로 이러한 햇빛의 패턴을 표현한 것이다.
그것은 실제로 정지된 조각 표면 위에 붙어 있는 금빛 철판의 파편일 따름이지만, 이채원이 투여한 생동감 넘치는 시적 은유 때문에, 우리에게는 움직이고 살아 꿈틀거리는 흔적처럼 보인다. 혹자에게 그것은 숲을 열고 들어온 햇볕이 도시 빌딩의 피부 위에 간지럼을 태우듯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이거나 또 어떤 이에게 그것은 빌딩 위에 걸려있는 구름이 모양을 바꾸면서 변화의 운동을 지속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인골드식으로 말해서, 그것은 구도시 구조물이라는 ‘죽은 선(dead line)’ 위에 살아 숨 쉬는 ‘생명의 선(living line)’을 드리운 작업이자, ‘지도 위의 선’을 걷어내고 ‘걷기의 선’을 올려놓은 작업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이 작품들은 자연에서 온 빛나는 생명의 선들이 어떻게 도시에도 덩굴 구조처럼 이어져 있을지를 질문하는 철학적 문제 제기에 답하는 이채원의 ‘시적 응대’라고 평할 수 있겠다.
III. 도시인이 자연을 보는 방법
앞에서 살펴본 사회학 및 인류 생태학과 관련된 거시적 테마의 두 연작과 달리 <도시인이 자연을 보는 방법> 연작은 도시인이 실내 공간에서 키우는 식물을 소재화하고 제재(題材)로 삼아, 스테인리스 스틸로 된 좌대 기반의 조각을 통해 작가적 체험에서 비롯된 ‘반려 식물과의 동거’와 같은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테마를 다룬다.
이 연작에서, 이채원은 반려 식물로 키우고 있는 남미의 열대 관엽 식물인 몬스테라 알보(Monstera albo)를 형상화한 조각들을 선보인다. 크고 갈라진 잎을 가진 이 식물은 엽록소 결핍으로 생긴 하얗거나 노란 얼룩인 ‘바리에가타(variegata) 무늬’가 특징인데, 희귀식물 마니아층 사이에서 고가로 거래될 만큼 반려 식물로 수요가 높다. 그녀는 레이저 커팅으로 만든 스테인리스 스틸 판을 휘거나 몇 겹으로 중첩하는 방식으로 잎 모양을 재현한 후, 흰색 혹은 연노랑의 얼룩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 위에 PVD 코팅으로 금빛을 낸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을 덧붙인다.
<도시의 숲> 연작에서 숲속 나무 표면 위에 비친 햇빛을 빌딩 형상의 조각 위에 재현하기 위해 사용했던 ‘철판 콜라주’의 방식을 계승하는 이 연작은 돌연변이로 생긴 희거나 노란 얼룩을 햇볕의 패턴과 같은 성질의 것으로 해설한다. 즉 나무 표면 위에 일렁이는 햇볕의 무늬나 몬스테라 알보의 바리에가타 무늬는 고정된 형상이 아니라 인골드가 고찰했던 것처럼 ‘살아 움직이는 선의 흐름’이다. 두 유형의 무늬들은 이채원의 작품에서 그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생명이 얽히며 만들어낸 생태적 서사이자 도시와 자연이 관계를 맺은 ‘운동 흔적’으로 자리한다.
나무 표면에 움직임의 흔적을 만드는 햇빛의 패턴이나 몬스테라 알보 위에 살아가는 시간 흔적을 남긴 바리에가타 무늬는 ‘생을 다한 완결된 선들’이 아니라 ‘계속 살아가는 궤적을 남기는 운동성의 선’이자 ‘살아있는 선’이다. 은유적으로 말해 그것은 흔적(trace)인 동시에 여러 개의 실이 얽히고 교차하면서 지속하는 직조(thread)라고 할 만하다. 그 직조란 ‘살아있는 선’이 교차하는 엮임을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서로를 감고 자라는 ‘덩굴 구조’와 같이 운동성을 지속하는 얽힘의 흔적을 만들면서 말이다.
이채원은 <도시인이 자연을 보는 방법> 연작을 통해서 반려 식물인 몬스테라 알보를 형상화한 미시적 세계에 천착하면서 도시인이 자연을 대면하는 공존(coexistence)과 공생( symbiosis)의 방식을 성찰한다. 그것은 미시계로부터 거시계를 성찰하는 동양철학과 맞닿아 있다. “쌀 한 톨 안에 무한한 우주가 들어 있다”라거나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라는 의미의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의 철학과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라는 인드라망(因陀羅網) 혹은 법계연기(法界緣起)의 개념을 설파하는 중국 불교의 화엄사상(華嚴思想)은 도시 생태학의 공존과 공생 담론과 맞물린다.
무엇보다, 이채원의 <도시인이 자연을 보는 방법>은 ‘자연뿐 아니라 문화의 상호 침투’를 강조하는 생태학의 공존, 공생 개념을 조형으로 탐구한다. 생태학은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 인간의 거주지와 같은 문화와 다양한 시스템 속에서 관계하는 모든 것과 무한히 연결되지 않던가? 도시의 실내 공간에서 관계하는 미시적 존재인 반려 식물과의 ‘동적 삶’을 조각의 언어로 제시하는 이채원의 이 연작은, 그레이엄 하먼(Graham Harman)의 ‘객체지향 존재론(Object-Oriented Ontology, OOO)’을 생태학적 사유에 접목해 온 티모시 모튼(Timothy Morton)의 주장과 연동된다. 모튼은 자연을 인간 바깥의 순수한 것으로 간주하는 사유 방식에 반대하면서, “생태학적 사유는 모든 것과의 상호 연관성을 사고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즉 모든 존재가 서로 얽혀 있음을 깊이 인식하면서 모든 것들과의 생태적 공존과 공생에 관하여 책임 있게 대처하는 인간의 실천을 성찰하는 것이다.
그렇다. 최근 생태학이 인간중심주의를 탈주하고 비인간 행위자에게 관심을 기울이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이성은 거부하거나 포기해야 할 것이 아니라 사회생태학(Social Ecology)의 주장처럼 자연과 인간 모두를 위해 더욱더 진보시켜야 할 무엇으로 간주해야만 한다.
작가 이채원은 ‘이채원-몬스테라 알보’, ‘도시인-반려 식물’, ‘도시-숲’, ‘인간-자연’이라는 모든 관계를 ‘살아있는 선’으로 묶어내고 상호작용을 하게 만들면서 생태학의 공생 담론으로 확장한다. 즉 자연과 인간 모두를 위해 진보시켜야 할 이성을 바투 잡고 자연과의 공생이라는 책무를 어떻게 실천할지를 성찰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녀의 작업은 “살아있는 존재와 그들이 살고 있는 환경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정의되는 생태학을 조각의 언어로 탐구하고 실천하는 것이라 평가할 수 있겠다.
IV. 에필로그
작가 이채원은 <도시의 숲>, <이어지는 숲>, <도시인이 자연을 보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세 연작을 통해서 도시와 숲 사이의 경계에 질문하면서 ‘공생의 도시 생태학’을 조형적으로 탐구한다.
세 연작은 단절과 억압의 도시에서 연결과 회복의 도시로 이행하는 생태적 서사를 구축한다. 그녀의 작품에서 도시는 자연과 구분된 폐쇄적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존재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엮여 살아가는 장소이며, 상호 순환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살아가는 유기적 구성체로 드러난다. 이처럼 이채원의 작업은 도시를 ‘살아 있는 네트워크’로 재인식하게 하며, 도시는 더 이상 자연의 부재가 아니라, 비인간 행위자들과 공존하는 생태적 몸(ecological body)임을 선언한다. 그녀의 연작에서 도시는 이미 생태적 회복력을 통해 자연과의 공존과 공생을 지속하는 ‘이어지는 숲’인 셈이다.
따라서 그녀의 이번 개인전 《이어지는 숲》은 도시를 문제적 대상으로 고립시키지 않고, 도시와 숲이 이어지고, 인간과 더불어 비인간적 주체들이 상호 교감하는 ‘삶의 장’으로서 바라보면서, ‘공존, 공생의 도시 생태학을 조형적으로 성찰하고 실험하는 미학적 실천’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20250803)
